프린세스 로열 메리(1631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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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. 개요[편집]
잉글랜드, 스코틀랜드, 아일랜드의 왕 찰스 1세의 장녀이자 오라녀 공 빌럼 2세[1] 의 아내이자 훗날 잉글랜드의 국왕이 되는 윌리엄 3세의 어머니이며, 영국 역사상 최초의 프린세스 로열[2] 이다.
2. 생애[편집]
2.1. 어린 시절[편집]
훗날의 남편 빌럼과 함께
찰스 1세와 앙리에트 마리 사이에서 4남 5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. 이름은 어머니의 잉글랜드식 이름인 메리 헨리에타로 정해졌다. 1642년 최초로 왕의 장녀에게 주어지는 직책인 '프린세스 로열'에 임명되었고, 이후 영국에서는 왕의 장녀에게 이 직책이 주어지는 전통이 생겼다. 프린세스 로열은 앙리 4세의 딸이었던 앙리에트 마리가 프랑스에서 왕의 장녀에게 '마담 루아얄' 직책을 주는 방식을 모방한 것이었다.
2.2. 결혼[편집]
남편 빌럼 2세와 함께
찰스 1세는 메리가 펠리페 4세의 장남 발타사르 카를로스나 팔츠 선제후 카를 1세 루트비히와 결혼하길 바랐다. 하지만 메리는 네덜란드 총독, 오라녀 공 프레데리크 헨드리크의 아들 빌럼과 약혼하게 되었고, 1641년 5월 2일 런던 화이트홀 궁전에서 결혼식을 올렸다.
결혼 당시 메리가 9살밖에 안 됐기 때문에 부부관계는 없었다고 하며, 1642년 어머니 앙리에트 마리와 네덜란드 공국에서 거주하게 되었다. 1647년 3월 남편 빌럼 2세가 오라녀 공이 되었으나, 3년 뒤인 1650년 11월 천연두로 사망하였다.
2.3. 남편의 죽음 이후[편집]
남편이 사망한 후 며칠 뒤 메리는 아들 빌럼(훗날의 윌리엄 3세)를 낳는다. 그녀는 빌럼의 어머니였음에도 불구하고 시어머니 아말리아로 인해 아들의 이름을 마음대로 지을 수도 없었을 정도로 권한이 약했다.[3]
스튜어트 왕조에 대한 동정심 때문에 그녀는 네덜란드 국민들에게 인기가 없었으며, 국민들은 메리가 오빠 찰스 2세와 남동생 제임스 2세에게 보여준 호의적인 태도에 분노했다. 이후 그녀는 가족들을 볼 수 없었고, 제임스 2세의 시종 헨리 저민과 비밀리에 결혼했다는 추문이 나돌았다. 이 소문은 사실이 아닐 확률이 높지만 찰스 2세는 메리와 헨리 저민을 보지 못하게 하였다고 한다. 1657년부터 사촌 루이 14세의 도움을 받아 섭정을 하였다.
2.4. 사망[편집]
찰스 2세가 복위된 이후 메리의 위상 또한 격상되어 1660년 9월 잉글랜드로 돌아온다. 이후 1660년 12월 런던 화이트홀 궁전에서 천연두로 사망하였다.
3. 가족관계[편집]
3.1. 조상[편집]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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